MEDIA WILL1

사이트맵으로 이동
우리는 '쿠폰族'… 4만원 주말데이트법 2004.09.15
우리는 알뜰커플

신세대 짠순이 짠돌이의 불황 극복기…

19만원 주말데이트 비용, 4만원에 해결

2000원으로 1만4000원짜리 영화 데이트

각종 혜택 쿠폰·카드 모아 지갑 만들어 따로 휴대

노래방·음식·호프집… 언제나 할인에 공짜까지

일요일인 지난달 29일 아침 9시 ‘명동 CGV’ 앞에서 만난 정윤교(25·한신대 광고홍보학과 4학년)·김인경(25·회사원)씨 커플. 일요일 아침인데도 졸린 기색이 전혀 없는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 시간이 퍽이나 익숙한 눈치다.

“영화는 주로 이 시간에 봐요. 조조할인하고 할인카드 쓰면 둘이 합쳐 2000원이면 되거든요. 비디오 값으로 영화관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최신작을 볼 수 있으니 좋잖아요.” 남자친구 정윤교씨의 첫마디. ‘알뜰 내공’이 심상치 않다.

정씨와 김씨는 50여개의 쿠폰과 할인카드로 ‘완전 무장’한 신세대 짠돌이·짠순이 커플이다. 김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알뜰녀’. 매달 초면 쿠폰집을 뒤져 필요한 쿠폰들을 오려두고, 각종 포인트 카드는 별도의 카드지갑에 넣어 항상 핸드백 구석에 대기시켜 둔다. 이런 그녀를 보니 한 쇼핑퀸이 3년 만에 1억원을 모은 얘기를 담아 장안에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책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가 떠올라 “혹시 남자친구보다 쿠폰이 더 좋은 건 아니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 책 주인공은 펑펑 쓰다가 어느 날 이게 아니다 싶어 맘 먹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거잖아요. 저는 원래부터 아껴서 생활해 왔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죠. 전 남자친구도, 쿠폰도 모두 좋아요. 호호.”

짠순이 ‘여친’과 2년 정도 사귀다 보니 정씨도 이젠 여자친구 못지않은 알뜰족이 됐다. 서랍 안에 잠자고 있는 가족들의 이동통신카드를 챙겨쓰고, 부모님이 쓰지 않고 그냥 버리는 캐시백을 싹싹 긁어모아 쓸 정도.

그 어느 때보다 악성인 ‘불황 바이러스’가 일상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요즘 이들 커플처럼 ‘똑똑하게 쓰고 똑똑하게 즐기는 법’을 제대로 알면 불황이 그리 힘겹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알뜰 커플의 주말 데이트를 따라가 봤다.

일요일 아침을 시작하는 영화로 정윤교·김인경 커플이 선택한 영화는 스필버그 감독의 ‘터미널’. 빈틈없는 알뜰족답게 정씨가 며칠 전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서 예매해둔 표다. 1인당 7000원씩 1만4000원인 표가 조조할인(6000원)을 거치고 신한카드(4000원 할인)와 LG텔레콤 멤버십 카드(2000원 할인)를 거치니 단돈 2000원이 됐다. 1인당 1000원. 정씨 말대로 정말 비디오 대여값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엔 정씨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사실 전 SK텔레콤 써요. 여자친구는 KTF 쓰고요. LG텔레콤은 어머니 휴대폰인데요, 멤버십카드 제가 쓰려고 제 명의로 가입했어요. 이동통신 3사 카드가 다 있으니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영화관에서 웬만한 혜택은 다 받죠.” 강적임이 틀림없었다.

두 시간여의 영화 감상을 마치고 이들이 향한 곳은 명동에 있는 커피숍 ‘커피빈’. 문을 들어서자마자 여자친구 김인경씨는 핸드백 속에서 각종 할인카드와 적립카드 20여장이 차곡차곡 끼워져 있는 카드 지갑과 잘라놓은 쿠폰 뭉치를 소복이 넣은 쿠폰 지갑을 꺼낸다.

그녀가 꺼낸 커피빈 적립 카드에는 12개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음료수 한 잔이 공짜다. 이 무료 쿠폰으로는 그중 비싼 홍자몽주스(4800원)를 시켰다. 여기에 4300원짜리 아이스커피 레귤러 사이즈 한 잔과 2500원짜리 베이글을 더해 간단히 점심 때우기.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이들은 정동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샤갈’ 전시회와 정동 도깨비스톰 전용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퍼포먼스 ‘도깨비스톰’을 보기 위해서였다. 두 인기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하는 데 커플이 쓴 돈은 고작 1만원. 1인당 1만원인 샤갈 전시회 관람권은 쿠폰을 3회 사용한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티켓을 주는 쿠폰 전문업체 코코펀의 이벤트에 참가해 공짜로 얻었다.

1인당 4만원인 도깨비스톰은 남자친구가 공연 기획사 PMC의 블로그를 방문해 이웃으로 추가하고 덧글을 남기는 이벤트에 참여, 무료 관람권 2장을 얻어냈다. 최근 들어 김씨와 정씨의 데이트 일등공신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펼쳐지는 각종 문화 이벤트. 수시로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면 인기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황금 기회도 낚을 수 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커플은 명동에 있는 중식당 ‘제이드 가든’에 갔다. 굳이 명동까지 다시 간 이유는 부지런한 김씨가 쿠폰을 사용한 다음 후기를 작성하는 쿠폰 이벤트에 참여해 낚은 무료 시식권 때문. 자장면에 탕수육, 칠리새우 등 3만원 상당의 음식을 배불리 먹었지만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열 필요가 없다. 이런 숨은 이벤트를 귀신같이 찾아 써먹는 ‘이벤트의 귀재’ 김씨는 “후기 한 줄 남기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의외로 그런 기회들을 그냥 넘겨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당첨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오후 7시 신촌의 한 맥줏집. 생맥주와 오징어, 치킨너겟 안주를 먹었는데, 휴대폰 모바일 쿠폰 덕에 9500원짜리 치킨너겟 안주와 1800원짜리 생맥주 500cc는 무료. 모바일 쿠폰을 자주 이용하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얼마 전에는 모바일 쿠폰 쓰려고 하루 동안 친구랑 아예 휴대폰을 바꾼 적도 있는걸요. 지난달 18일 KTF에서 캐리비안 베이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주는 거예요. 저는 SK텔레콤 쓰고 있어서 아까운 기회를 그냥 놓쳐야 하나 발을 동동 굴렀는데, 생각해 보니 친구 휴대폰 빌리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결국 KTF 쓰는 친한 친구한테서 휴대폰을 빌렸죠. 대신 제 휴대폰은 그 친구가 쓰고요.”

호프집에서 나온 커플은 시계를 보더니 신촌 독수리다방 앞으로 갔다. 그들이 들른 곳은 쿠폰을 사용한 영수증을 가져오면 다양한 공연 관람권과 사은품을 받을 수 있는 쿠폰방인 ‘코코방’. 코코펀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매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신촌·대학로·강남 등에 설치된다. 이날 김씨 커플은 그동안 사용한 쿠폰 영수증 5개를 가지고 가서 무료 영화 예매권을 받았다. “야 신나! 우리 다음주에는 무슨 영화 볼까?” 무료 관람 찬스에 벌써부터 들뜬 여자친구의 얼굴엔 어느새 함박웃음이 번졌다.

긴 하루의 마무리는 노래방에서 하기로 했다. 홍대 앞 노래방 ‘질러존’. 가수 뺨치는 노래와 댄스 실력을 자랑하는 정씨 커플. 노래 몇 곡을 부르니 목이 막힌다. 때마침 등장한 음료수. 미리 챙겨온 할인쿠폰에 포함된 것이란다. 1시간에 1만5000원인 노래방비도 쿠폰으로 2000원 할인받았다.

이날 하루 정씨 커플이 쓴 돈은 총 4만4200원. 할인카드와 쿠폰 등이 없었다면 원래 19만4300원이었던 것을 15만원 가량 절약한 것이다. ‘돈 몇 푼 아끼자고 쿠폰 잘라대는 일을 어떻게 하겠냐’는 ‘귀차니스트’들도 이만하면 귀가 솔깃할 만하다.

12시간에 걸친 정윤교·김인경 알뜰 커플과의 긴긴 데이트를 끝마치고 헤어지는 길, 두 사람은 웃으며 말한다. “저희 절대 ‘자린고비’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싸게 즐길 수 있는 기회들을 남들보다 더 찾아 쓰는 실속파일 뿐이니까요.”

(글=김미리기자 miri@chosun.com )
(사진=조선영상 유창우기자 canyou@chosun.com )
목록